5년 간의 말레이시아 생활을 뒤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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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년 간의 말레이시아 생활을 뒤돌아보며

by 뚱냥이엄마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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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말레이시아에 온지 5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겪은 일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2015년 3월
IT 콜센터 취직, 말레이시아 사이버자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사이버자야에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미국계 IT회사로, 말레이시아에서의 제 첫직장은 IT콜센터였습니다.

당시 제 영어실력은 달달 외운 영어로 겨우 자기소개가 가능한 정도였어요. 영어에 아주 취약했지만, 한국어와 일본어 구사가능한 바이링걸이었기에 입사가 수월했던 건 사실입니다. 당연히 회사 트레이닝, 팀허들, HR과의 커뮤니케이션, 병원 방문은 혼자서는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 무사히 1년을 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같은 프로젝트에 말레이시안, 중국인, 태국인, 인도네시안, 태국인, 필리피노, 일본인 등이 다 함께 일하는 환경이 신선했어요. 점심시간이면 무슬림 동료를 따라 가성비가 좋은 마막에서 손으로 밥도 먹고 그랬죠.

당시 함께 일하셨던 한국 동료분들은 어느정도의 영어실력과 IT백그라운드가 있는 분들이셨으며, 바이링걸의 경우 그 장벽이 더 낮았습니다. IT콜센터에서는 양쪽 다 서포트가 가능한 바이링걸을 채용하는게 여러모로 이득이니까요.

저는 샤프트베리라는 콘도에 살았었고 당시 사이버자야는 한참 개발 중이어서 여기저기 건물이 올라올 무렵이었습니다. 집근처 쇼핑몰로는 디펄즈 하나로 오픈한지 얼마되지않아 빈 상가가 많았었죠.

*당시에는 회사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한 콘도는 샤프트베리 or 디펄즈 콘도 뿐이었습니다. 샤프트베리는 Serviced suites/Condo였고 로망이 있는 곳이었죠. 저녁식사후, 콘도 주변을 걷는 밤공기가 참 좋았습니다. 디펄즈콘도는 쇼핑몰과 직결되어있어 생필품을 구하기가 편리했습니다.

​2015년 10월 -2016년 3월
따분한 사이버자야, 온라인 한국어 교사 양성과정 시작

사이버자야에서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무료한 시기였습니다. 말레이시아에 대해 잘 몰라 매일 회사-집을 오갔을 뿐이죠. 시간이 많다고해서 영어공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쿠알라룸푸르로 영어학원을 다니려면 교통비가 더 든다는 핑계로요.

말레이시아에 오기전 일본에서 8년 넘게 유학과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시간적 여유를 감당하지 못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7개월을 그렇게 허무히 보내고, 나머지 여가시간을 서울대 온라인 한국어교사 양성을 듣고 무사히 수료를 한 것 뿐이죠.

그리고 아마도 이 무렵부터 콜센터에 대해 컴플렉스를가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어요. 한국 돌아갔을때도 콜센터에 대한 얘기는 지인들에게 절대 꺼내지 않았죠. 그러니 그냥 말레이시아에 있는 글로벌 IT회사에서 일을 하는 걸로 생각했을 겁니다.

2016년 3월

다른 IT콜센터로 이직,KL로 이사, 미친 에이전트, 영어/중국어/말레이어 배우기

당시 지인의 소개로 Bukit Jalil 에 있는 IT콜센터 전화면접을 보게됩니다. 1년간 말레이시아에 있었지만 회사-집 생활이었기때문에 영어실력은 제자리였습니다. 겨우 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였죠.

식은 땀을 흘려가며 조인한 전화면접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현재 콜센터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지, 내가 받고 있는 월급은 얼마인지, 내가 원하는 월급은 얼마인지 등이었죠. 전화 인터뷰 다음날, 바로 오퍼를 받았습니다. 제 지인의 지인이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제가 바이링걸이라는 점, 그리고 그 매니저가 저와 같은 회사 출신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회사는 일이 빡세고 월급은 적기로 유명하니까요 ㅎㅎ

이직과 동시에 Bukit Jalil로 이사를 갔습니다. Sri petaling에 있는 B급 쇼핑몰 Endah parade에서 가까운 콘도로 650링깃에 마스터룸을 구했어요.

Endah regal이라는 곳이었는데 역까지는 걸어서 25분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툭하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15층까지 걸어가기 일쑤였죠. 생수라도 산 날에는 진짜 극기훈련임 ㅋㅋㅋ 같은 유닛에는 말차커플 그리고 다른방에는 베트남 직장인분이 살고 있었어요.

잊을만하면 수도공사로 물이 끊긴다는 공지가 돌아오고, 엄지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로 앞방에 사는 하우스메이트를 깨우는 날도 있었죠. AEON에서 큰 통과 바가지를 구입해 물을 받아놨던 기억도 납니다. 수돗물을 켜면 커피색 물이 콸콸 흘러나와 기겁할때도 있었죠.

이직한 회사는 인도계 회사로, 미국계 글로벌 기업을 서포트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월급 이외의 복리후생은 보험카드가 다 였지만 콜이 거의없어서 정말 편했어요. 그야말로 신의 직장이었죠. 오후 4시반에는 일이 끝나니 장봐서 밥도 해먹고 띵가띵가 놀다가 취침.

시간도 많으니 드디어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부킷빈땅에 있는 ICLS라는 어학원인데, 일주일에 한번 수업이 있었어요. 가격은 교재비 포함 550링깃 정도로 차이니즈 말레이시안 선생님이었습니다. 같은 곳에서 중국어 공부도 시작하고 레벨2로 올라갔는데 학생수 미달로 반이 없어져 버렸어요. 다른 반이 개설되는걸 기다렸지만 결국 개설은 되지않아 포기했지요.

이번에는 학원을 옮겨 KL Sentral에 있는 YMCA에서 영어와 말레이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YMCA는 다른 어학원에 비해 수업료가 저렴한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전문성을 따지자면 선생님 나름(?) 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영어수업 역시 연세가 있으신 차이니즈 말레이시안 선생님이었는데, 수업 때마다 한번씩 던지는 그 조크가 불편했습니다. 반에서 유일한 코리안인 저에게는 우스갯소리로 김치를 들먹였고, 다른 일본인 남자분께는 다음에 초밥 만들어와라 라는 말이 전혀 유쾌하지않았거든요. 선생님은 딱히 악의를 가지고 말씀하신건 아니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존중하지 않아 보이는 그 태도가 쭉 맘에 걸렸던건 사실 입니다.

제가 조인한 말레이수업 선생님은 너무 경험이 없어서 배우니 마니 했지요. 무엇보다도 영어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아직 일렀나봅니다.

같은 해에 암팡에 있는 다가람 센터를 통해 말레이어를 배우기 시작하지요. 집에서 많이 많이 멀었지만, 적당한 수업료와 한국어로 말레이어 문법설명을 들으니 시원한 곳을 긁어주시는 기분이라 참 좋았습니다.

허름한 콘도를 떠나, 부킷잘릴 스터디움앞에 있는 Savanna라는 콘도로 이사를 했어요. 거기서 아주 악덕 에이전트를 만나게 되지요. 디포짓은 냈지만 아무 계약서도 제공하지 않으며 영수증조차 주지 않았죠. 여자 4명이 사는 집에 연락도 없이 문을 따고 들어오는그런 상식이 없는 사람이었기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싸운 적도 있어요.

1000링깃 정도의 마스터룸에 살았는데 저를 제외한 나머지방에는 차이니즈 치대생, 인도계 말레이시안인 공무원, 국립스포츠센터에서 일하는 사바출신 직장인이었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아무런 피드백과 액션도 취하지않는 수동적인태도에 놀랐습니다. 나만 ㅁㅊㄴ됨

*Bukit Jalil에는 대학교가 두곳 있습니다. 부킷잘릴 스터디움 근처에는 IMU라는 사립의대가 있고, TPM(Technology park Malaysia) 안에는 APU 라는 대학교가 있지요.

2018년 3월

콜센터를 그만두다.

2년 동안 잘 다니던 콜센터를 그만뒀습니다. 이유는 월급. 바이링걸로 일을 하며 한국팀과 일본팀 일을 백업해왔는데 일본팀 말레이직원이 못 버티고 금방 나가버립니다. 일본어 하나만 서포트 하는데 말이죠.

그 빈자리를 메꿔야하는데 제 월급은 제자리였고 아무런 성과급도 없어, HR에게 월급인상 요청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나는 어느팀의 누구고 일본팀의 부재로 3개월째 혼자 일본팀 일을 하고 있으니 월급을 1000링깃 올려달라" 였죠. 하지만 600링깃을 올려준다는 회신을 받게되어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합니다. 일본어스피커를 고용했다면 적어도 한달에 6000링깃을 지불해야하는데, 겨우 600링깃으로 퉁 치려하는 회사가 너무 괘씸했어요.

그 후, 유럽계 글로벌 회사 면접을 보러갔는데, 1시간이 지나도 면접관이 나타나지 않는겁니다. 리셉션한테 재촉을 하고나서 도착한 면접관은 우르르 4-5명을 몰고 오더군요. 1시간동안 4-5명에게 돌아가며 일본어/한국어/영어로 질문을 받았고, 며칠이 지나 오퍼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전 직장 월급에서 1900링깃 올려 이직을 하게됩니다. 하아... 3년간의 IT콜센터 드디어 탈출.

물론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이 회사 말고도 꾸준히 다른 면접은 봤습니다. 기억하는 회사는 Dimension data, Comuter center, British tabaco, Regus, Apar Technologies 였었죠.

Dimension data는 1차면접 통과 후 나이트 시프트가 있다는 말에 그냥 2차면접은 거절했어요. 월급과 EPF가 참 끌리긴했는데 말이죠.

Computer center는 사무실이 Puchong이라 이사를 하지 않고도 통근가능한 위치였어요. 솔까 바이링걸에 IT콜센터 3년 경력이니 전화면접은 당연히 패스, 대면면접은 거절했습니다.

브리티시 타바코는 관심이 없었는데 HR로부터 끈질기게 전화를 받았어요. 면접을 갔더니 세상 빡쎈 면접이었습니다. 파이낸스관련 일본어 스피킹 포지션이었는데 당연히 저는 관련 경력이 없었죠. 일본어로 읽기, 쓰기, 말하기 테스트를 다 시키고, 인터넷으로 적성검사도 있었어요.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빡쎈 면접도 있구나 하고 아주 새로웠지요 ㅎㅎ

Regus는 일본어 스피킹 콜센턴지 알고갔더니 일반적인 콜센터는 아니었습니다. 포텐셜 고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안내하여 오피스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들어야라는 세일즈잡이었습니다. 면접은 남자과 여자분 각 한명씩으로 셋이서 진행했는데, 제 목소리가 신뢰감과 안도감을 안겨 주니, 이 일에 아주 적합할거라고 하네요 ㅋㅋㅋㅋ니가 원한다면 일본에 있는 다이렉터와 면접을 잡겠다고 했지만, 세일즈는 생각도 안 해본 영역이라 2차 면접은 거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변명이었고, 세일즈잡에 대해 겁이 났던 것 같아요.

Apar Technologies는 IT관련 커뮤니케이터라는 포지션으로 IT 장애가 생겼을때, 일본내의 엔지니어들과는 일본어로 소통,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해 티켓은 영어로 요청해야하는 일이었는데, 아주 보기좋게 떨어졌어요.

면접시엔 일본어/영어 번역도 시키고, 일본에 있는 담당자와 화상채팅도 진행하면서 아주 흡족한 피드백까지 받았는데 내가 왜 떨어졌는지 몰랐었죠 ㅎㅎ 그리고 부터 몇개월 뒤 다른 회사 면접을 봤는데 그 회사 HR이 새 회사로 이직을 해 면접관으로 또 만나게 됩니다 ㅎ 당시 내가 떨어진 이유는 주니어를 뽑아야하는데 내가 원하는 월급이 너무 쎗다고 하더군요.

2018년 4월-8월

4개월만의 퇴사

이직과 동시에 3월말에 Bangsar south로 이사를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만난 여자애와 함께 집을 구하게 된거죠.

그 유명한 글로벌 회사는 입사전까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첫날 출근 후에서야 어떤 프로젝트인지 알게 되었죠.클라이언트의 정보가 컨피덴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클라이언트는 Cash flow가 좋은지 사람을 뽑아놓고도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아 매일 인터넷만 하다가 집에 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큰 회사여서 내심 기대였지만, 뽑아만 놓고 제대로 케어는 불가능한 회사였어요. 프로젝트가 시작된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했고, 의미없는 미팅이 하루에 두번, 위클리미팅과 먼슬리미팅도 있었죠.

핸들할 예정이었던 제 팀 프로젝트가 미뤄지자 저는 성적이 저조한 팀의 성과를 올리기위한 요원으로서 투입이 되었습니다. 그 팀은 눈에 띄게 날로 좋아져 갔지만, 저는 여전히 아무런 트레이닝을 받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던져지게 됩니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클라이언트에게 휘둘리는 매니지먼트, 그런 클라이언트에게 줏대없이 무조건 Yes라 대답하는 상사, 체계가 없는 매니지먼트 스타일, 해당업계 일을 배움으로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커리어면에서의 이점이 없어보여 입사한지 4개월만에 퇴사를 하게됩니다. (그 후 내 동료들도 10명가까이 그만둠 ㄷㄷㄷ)

항상 눈앞에 있는 불만 끄기 바빴고, 하루살이 같은 그 조직이 싫어 좋은월급과 복리후생을 마다하고 사직서를 낸거죠. 그것도 Probation 마지막날에 말이죠. 그 조직에 있었다면 제 이력서는 좀 더 화려해질 수 있었겠지만, 그 회사를 그만둔건 내 인생에서 3번째로 잘한일이었습니다 ㅋ

그 바쁜 와중, 4개월 만에 그만두는게 뭔가 아쉬워서 Senior Operation Manager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4개월간의 내 업무를 평가해달라고 ㅋㅋㅋ 당장 다음주에 그만두는 마당에 4개월간의 피드백을 받는건 좀 뜬금없지만 4개월간 정말 최선을 다했고, 내가 부족했던 점이 뭐였는지 진심으로 알고 싶었어요. 그 분께는 좋은 피드백을 받고 송별회까지 해주셨으며, 링크드인 친구도 했어요 ㅎㅎ

그만 둘 무렵, 아마존재팬 콜센터가 말레이시아에서 오픈을 한다길래 면접을 봤습니다. 팀리더와 QA포지션이 오픈되었는데, 월급이 아주 괜찮았어요. 무려 Up to Rm14,000.

일본에서 아마존재팬 마켓 플레이스 셀러로서 2년 넘게 활동을 했기때문에 아주 자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리셉션에서 여권 관련으로 세큐리티와 실나위로 면접에 5분정도 지각을 해버렸죠 ㅠ 제가 요청한 월급이 너무 쎗는지 아니면 일본어 네이티브가 아닌 게 문제가 되었을까요? 일본인 동료와 같은날 면접을 봤는데, 그는 붙고 저는 탈락 통보를 받았습니다. 씨부럴, 잘 먹고 잘 살아라! 자존심은 상했지만, 후에 아마존재팬에 입사한 다른 동료의 말을 들으니, 제가 떨어진건 하늘이 도왔더군요. 긴말은 하지 않겠으나, 내가 본 회사 중에서 최악.

2018년 6월

말레이시아에서 혼인신고

당시 사귀던 말차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하고 푸트라자야에서 혼인신고 부터 진행하게 되는데, 1달이 넘는 프로세스와 그 방법에 놀라게 됩니다. 이름과 사진, 국적 등이 적힌 혼인신고 신청서를 1달간 공개적으로 게시판에 붙여놓더군요. 하지만 내국인, 외국인 모두 게시판에 붙인다고 하니 납득함 ㅎㅎ 외국인만 그랬으면 한국 대사관에 신고했을거임 ㅋ 껄껄껄 . 참고로 누군가가 그 기간에 둘의 결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최악의 경우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2018년 8월

결혼, 신혼집으로 이사

고향 경북 상주에서 전통혼례를 했습니다. 한 여름날 전통 혼례복을 입고, 야외에서 말이죠 ㅋㅋㅋㅋ 굳이 8월에 한 이유는 여름 세일때 쇼핑을 하기 위해서 였고, 삶의 중요한 이벤트를 결혼식장에서 쫒기듯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일에 쫒기며 바빳기 때문에 결혼식 준비는 모두 인터넷과 전화로 해결했습니다. 결혼식장 예약/전통혼례에 필요한 물건준비/가마꾼, 사회자 등의 인력섭외, 야외에서 필요한 의자/천막 예약/청첩장 준비, 피로연예약/외국에서 오는 분들을 위한 숙소예약/결혼 앨범 /포토존을 위한 조화구입 등등

8월에 퇴사를 하면서 Bangsar south에 살던 집도 정리하게 되는데 4 개월 밖에 살지않아 집주인과 Nego 후, 디포짓을 다 돌려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매번 말을 바꾸는 집오너와 새 입주자의 Nego 때문에 정말 골머리였음. 진짜 할말하잖..

2018년 9월

새 회사 면접

비슷한 시기에 2곳을 지원했어요.

먼저 Pactera라는 곳. 소프트웨어 QA 포지션이었던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전화 면접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더군요. 당연히 없었고 그 후 딱히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두번째는 콜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되고, 그 다음날 오퍼를 받게됩니다. 이전 직장을 4개월 만에 그만 둔 나쁜 전적(?) 을 가지고 있어 면접에서 많은 질문을 받게 되지요. 적어도 일을 쉽게 그만두는 이인지, 그 직장에 문제가 있었는지 분간할 필요가 있었을테니까요. 월급은 이전 직장보다 낮아졌지만, 새로운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2018년 10월-11월

말레이시아 배우자비자 취득과 취소, 워킹비자를 재신청

1달간의 노고 끝에 배우자비자를 받았습니다. 일을 하기 위한 도장만 하나 더 이미그레이션에서 받으면 되었는데, 갑작스럽게 말레이시아 이민법이 바뀌게 됩니다.

배우자비자를 받은 여성은 3년간 일을 하면 안되는 법이 생겨 버린거죠.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한달에 걸쳐 받은 배우자비자를 취소하고, 일을 하기위한 워킹비자를 신청합니다.

이때, 완공된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고, 시댁 살이도 빠빠이. 그동안 집에 들어갈 조명, 실링팬, 에어콘, 싱크대, 손잡이까지 다 고름. 잦은 남편의 출장으로 페인트 칠과 커텐도 다 혼자서 달았습니다.

2018년 12월-현재

드디어 워킹비자를 받고 새 회사에 입사. 4개월동안 기다리준 새 회사에 감사하며 일하기로 하지만, 일은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시험에 합격해야만 오페레이션을 시작할 수 있는데 영어가 딸려서 몇번이나 떨어졌다는...

매일 매일 그만두고 싶은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이제 입사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일이 힘들때면 콜센터로 돌아갈까하는 약한 마음이 자꾸 생겨요. 이직을 하게되면 지금보다는 몸은 편할 수 있지만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생겼던 자격지심들이 다시 소환될테니 꾸욱 참고 버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첫일은 음반세일즈 매니저였으나, 말레이시아에서 3년간의 IT콜센터 일 , 4개월간의 유명 플랫폼회사에서의 일, 그리고 지금은 서플라이 체인계의 새싹이 되었습니다.

이직 후, 영어는 많이 늘었지만 아직 더 공부가 필요하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작년 10월부터는 중국어를 다시 시작해 올해 1월에 HSK 3 급에 합격했어요. 감으로 푼 야매 성적이긴 하지만, 앞으로 차곡차곡 기초부터 튼튼히 쌓아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이가 더 들기전에 다른 일도 해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다른나라에서 더 살아보고 싶기때문에 꾸준히 남편을 설득(?) 하는 중입니다. 일본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그것보단 동유럽,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대만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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